시민군 서호빈(당시 20살&middot;전남대 공과대 재학)은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항전하다 총을 맞고 숨졌다. 서호빈은 광주 망월동 5&middot;18묘지에 묻혔다. 전남 여수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아버지는 당국의 압력에 시달렸다. &ldquo;자식을 두 번 죽이는 것 같다&rdquo;며 이장을 꺼렸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1984년 1월19일 아들의 묘를 여수의 한 공동묘지로 이장했다. 서호빈의 유족은 5&middot;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(5&middot;18조사위) 면담에서 &ldquo;수사기관이 수시로 찾아왔고, 시청과 교육청을 통해 &lsquo;이장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라&rsquo;고 압박했다&rdquo;고 진술했다.<br /><br />5&middot;18민주화운동 진압 뒤 광주 망월동 시립묘지에 묻혀있던 희생자들의 주검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도록 한 &lsquo;최종 지시자&rsquo;는 전두환으로 드러났다. 전두환 반란세력은 총칼로 권력 장악을 마무리지은 뒤 민간단체를 앞세워 5&middot;18유족들을 회유하고 겁박해 26구의 주검을 망월동 묘지 밖으로 옮기게 했다고 5&middot;18조사위는 결론 내렸다.<br /><br />27일 5&middot;18조사위의 &lsquo;국가권력 등에 의한 피해자 탄압사건 조사보고서&rsquo;를 보면, 당국은 1980년 5월 광주 북구 망월동 시립공원묘지 3묘역에 안장됐던 126기의 묘지 가운데 26기를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. 묘지 이장은 1983년 3월부터 84년 9월까지 시행됐다. 이런 사실은 보안사령부(현 국군방첩사령부)가 1983년 2월에 작성한 &lsquo;비둘기 시행 계획&rsquo; &lsquo;유족묘지 이전대책 보고&rsquo; 등의 문서를 5&middot;18조사위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.<br /><br />조사위는 &ldquo;이 문서를 보년 &lsquo;1982. 3.5 전남 도지사 각하 면담시 공원묘지 이전 검토 지시&rsquo;라는 문구가 나온다&rdquo;며 &ldquo;당시 대통령 전두환이 전남지사 김창식을 만나 묘지 이전을 직접 지시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&rdquo;라고 밝혔다. 이후 전라남도는 1982년 7월30일 내무부 장관(노태우)에게, 505보안부대장은 그해 8월25일 청와대 정무2수석에게 묘지 이전 계획을 각각 보고했다.<br /><br />망월동 5&middot;18 희생자 묘지 이전 계획은 &lsquo;비둘기 시행 계획&rsquo;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. 전두환 세력은 망월동 묘지가 5&middot;18 학살을 상징하는 정치적 공간이 될 것을 우려해 강제 이전을 추진했다. 보안사령부의 전남지역 예하부대인 505보안부대는 사단법인 전남지역개발협의회(현 광주전남발전협의회)라는 관변단체를 내세워 묘지 이장을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것처럼 꾸몄다.<br /><br />전국의 기업 대표 등을 상대로 &lsquo;5&middot;18 치유&rsquo; 명목으로 기금을 모았던 전남지역개발협의회는 묘지를 이장한 5&middot;18유족들에게 1천만원씩을 지급했다. 당시 이장됐던 주검 26기는 현재 국립5&middot;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다.<br /><br />정경자 조사위 팀장은 &ldquo;공안기관이 협박과 회유를 통해 유가족들의 의사에 반해 묘지 이장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심대한 인권침해 사례&rdquo;라고 밝혔다.<br /><br />원문보기:&nbsp;https://www.hani.co.kr/arti/area/honam/1134104.html
<br />최근 활동을 종료한 5&middot;18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80년 5월 당시 최초 희생자가 &#39;전북대생 이세종&#39;으로 공식 확인됐다.<br /><br />5&middot;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그동안 청각 장애인 제화공인 김경철 씨로 알려져 있었다.&nbsp;<br /><br />11일 5&middot;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&#39;5&middot;18민주화운동 사망 사건&#39;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(당시 20세)다.<br /><br />전북대학교 농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씨는 5월 18일 오전 1시 40~50분경 사망했다.<br /><br />17일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&lsquo;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&rsquo;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18일 0시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.<br /><br />그 뒤 18일 오전 6시쯤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. 당시 경찰은 이 씨의 사인을 &#39;단순 추락사&#39;로 봤다.<br /><br />5&middot;18 항쟁이 끝난 뒤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5&middot;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사망자 현황을 처음 발표했다.<br /><br />다만 이 명단에는 사망자가 대부분 광주로만 한정돼 있고, 그마저도 오류가 많다. 사망자 명단이 당시 검시 대상자만을 대상으로 해 이 씨는 포함되지 않았다.<br /><br /><br /><br />이 가운데 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인물은 김경철 씨다.<br /><br />청각 장애인 제화공이었던 김 씨는 당시 23세로 5월 19일 오전 11시쯤 광주 금남로 제일은행 인근에서 계엄군에게 폭행당한 뒤 당일 사망했다.<br /><br />당시 그는 동료와 함께 시위 현장을 구경 나갔다가 진압하던 제11공수여단 소속 계엄군에게 붙잡혀 진압봉과 군홧발로 뒷머리를 포함해 온몸을 구타당했다.<br /><br />연행 피해자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광주경찰청 유치장으로 이송됐으며, 뇌출혈 상태로 방치됐다가 결국 사망했다.<br /><br />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김 씨가 장애를 겪고 있었던 데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는 사연도 알려졌다.<br /><br />이후 이세종 씨의 시체를 검안했던 이동근 전북대병원 교수가 &quot;두개골 골절과 간장 파열은 추락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&quot;며 계엄군의 집단폭행 사실을 밝혀내면서 5&middot;18희생자로 인정받게 됐다.<br /><br />2019년 12월 27일 출범한 5&middot;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범위는 &#39;광주&#39;로 한정돼 있었다.<br /><br />이 씨의 사망 장소는 &#39;전북 전주&#39;이기 때문에 이 때도 이세종 씨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.<br /><br />2021년 조사위의 조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법이 제정돼 지역적 조사 범위가 &#39;광주 일원&#39;으로 확장됐고, 5&middot;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가 공식 확인됐다.<br /><br />기존에 알려졌던 김 씨는 광주 지역 첫 희생자로 남게 됐다.<br /><br />5&middot;18 조사위는 이세종 씨를 최초 희생자로 규명한 것이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.<br /><br />허연식 조사2과장은 &quot;5&middot;18민주화운동이 광주에서만의 사건이 아니라 광주와 전남&middot;북, 나아가 전국의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예시&quot;라면서 &quot;당시 전국에서 예비검속이라던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연계돼 숱한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&quot;고 말했다.<br /><br />이어 &quot;5&middot;18이 단지 광주에서만의 상황이 아닌,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전국 일원에서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을 판단&middot;증빙할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있다&quot;고 덧붙였다.<br /><br />한편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항쟁 기간인 1980년 5월 18~27일 광주와 인근 지역의 5&middot;18 관련 사망한 민간인은 166명이다.<br /><br />이밖에 사망이 확실하지만 신원 확인을 못 한 행방불명자가 78명, 부상이 직&middot;간접적인 원인이 돼 결국 사망한 케이스가 113명이다.<br /><br /><br />breath@news1.kr<br /><br /><br />원문보기:&nbsp;https://www.news1.kr/articles/5346180
앵커<br /><br />5&middot;18 진상규명 조사결과보고서 내용을 분석한 연속 보도 순서입니다.<br /><br />5&middot;18 조사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17개 과제 가운데 11개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.<br /><br />민간인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다시 검증하는 등 진상 규명에 기여한 부분도 있습니다.<br /><br />보도에 김애린 기자입니다.<br /><br />리포트<br /><br />5&middot;18 민주화운동의 두번째 민간인 사망자로 알려졌던 고 김안부 씨.<br /><br />[김말옥/故 김안부 씨 처/2020년 당시 : &quot;(죽은) 애기 아빠가 장난하는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돌아가셔 버리니까. 나도 우리 아저씨를 보듬고 나도 기절을 해버렸어요.&quot;]<br /><br />고 김안부 씨에 대한 광주지방검찰청 검시 기록은 &#39;타박사&#39;였습니다.<br /><br />하지만 전남대 의대 시체 검안서에는 &#39;총상&#39;으로 기록돼 있고, 군이 작성한 문건에는 &#39;두부 맹관상&#39;으로 기재했다가 &#39;타박사&#39;로 고친 내용이 4년 전 KBS 보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.<br /><br />이번 조사에서 김씨가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습니다.<br /><br />이에 따라 조사위는 김씨를 첫 총상 사망자로 규정하고, 계엄군 발포에 의한 첫 사망 시점을 5월 20일 밤에서 김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인 5월 19일 자정 이전으로 정정했습니다.<br /><br />민간인 사망자 166명의 사망 경위는 81.3%가 총상, 구타와 차량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.<br /><br />연령별로 살펴보면 10대와 20대 사망자가 73.5%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습니다.<br /><br />성별로 따졌을땐 남성사망자가 90%로 압도적이었지만, 여성사망자도 12명이나 있었습니다.<br /><br />조사위는 5&middot;18 행방불명자들의 신원 확인 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.<br /><br />[허연식/5&middot;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장/1월 11일 : &quot;유해가 나오면 바로 유전자 확인할 수 있고, 여기에 구축되어 있는 시스템을 통해서 이 사람이 입고 있는 옷, 이 유해에서 함께 발굴되는 유류품 이런 것들 통해서 바로 대조가 가능할 수 있도록...&quot;]<br /><br />또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과 피해자 탄압사건 등을 포함해 총 11개 과제가 4년 동안의 조사 끝에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졌습니다.<br /><br />KBS 뉴스 김애린입니다.<br /><br />촬영기자:이성현<br /><br /><br /><br />원문보기:&nbsp;https://news.kbs.co.kr/news/pc/view/view.do?ncd=7907190&amp;ref=A